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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사랑할 수는 있다.”(아비정전) “1분 1초라도 모자라면 그건 평생이 아니야.”(패왕별희) “슬픈 일도 괜찮아, 세상 끝에 묻어 버리고 올게.”(해피 투게더)

홍콩 영화 황금기였던 1980~90년대 청춘스타 장국영의 영화 속 대사들이다. 뜻은 아리송해도 왠지 낭만과 ‘간지’가 배어나는 이 대사들은 지금도 ‘장사모(장국영을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의 기 ibk저축은행 좀 알려주세요. 억 속에 또렷이 남아 그들의 입을 통해 때때로 발설되고 있다. ‘낭빼시(낭만 빼고 시체)’인 까닭에 장사모가 됐고, 중년이 되었어도 그 낭만을 버리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영원한 우상’의 기일에 모여 추모행사를 연다.
3일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개막한 연극 ‘굿모닝 홍콩’의 설정이다. 도전적인 실험으로 정평난 대학로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공무원대출금리 작품으로, ‘영웅본색’ ‘천녀유혼’ ‘아비정전’ 등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초반 장국영이 부른 ‘당년정’이 흐를 때부터 몰입감이 치솟는다. 2003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장국영의 기일인 만우절을 거쳐 4월 6일까지 한달 넘게 공연한다. 상업극도 아니고 소규모 민간 극단의 창작극으로선 이례적인데, 장국영을 추억하는 중장년 팬덤의 지지가 뜨겁다.
국민연금 개인사업자 덕분에 한산하던 세실극장까지 다시 북적이고 있다. 230석 규모 소극장인 세실극장은 사실 ‘누가 운영해도 망하는’ 극장으로 악명 높았다. 1976년 대한성공회 대성당 별관으로 설계된 서울 미래유산으로, 개관 초기엔 연극인회관으로 사용되며 소극장 연극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연극사의 주요 공간이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대학로 중심의 연극 문화가 정착되면서 거상할인이벤트 점차 소외됐다. 재정난으로 운영 주체가 수차례 바뀌며 개·폐관을 반복했다. 2018년부터 서울시가 장기 임대해 서울연극협회가 위탁 운영했지만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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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22년 국립정동극장이 운영을 맡아 ‘국립정동극장 세실’이란 이름으로 부활하면서 달라졌다. 영세한 민간단체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2차 제작극장’으로 포지셔닝한 덕이다. 연극·뮤지컬·전통·무용 장르에 걸쳐 민간이 창작해 시범공연을 마친 작품의 재공연 제작과 지역 투어를 지원하는 ‘창작 ing’ 사업이 궤도에 올랐다. 올해 3회째 시즌을 맞는데, 10개 작품 선발에 400여개 작품이 몰릴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창작 초연을 지원하는 사업은 많지만, 설익은 초연작이 완성도를 보완해 자생력을 갖추도록 레퍼토리화를 돕는 사업은 드물기 때문이다.

이번 ‘굿모닝 홍콩’ 재공연은 정동극장이 올해 30주년을 맞아 처음 론칭한 ‘세실 기획공연’이다. 지난 시즌 공연된 10개 작품 중 단 한 작품을 선정해 장기 공연 기회를 준 것. 통상 2~5명 정도가 출연하는 소극장 무대를 20여명의 배우가 가득 채운 것도 인상적이다. 공공극장이 제작부터 홍보마케팅까지 전적으로 책임지는 기회인 만큼 극단 멤버 전원을 출연시키는 데 의의를 두었다고 한다. 전폭적인 지원 덕에 재공연은 완성도를 더했고, 세실극장의 존재감도 달라졌다. 민간과 공공극장의 윈윈 사례인 것이다. 정성숙 정동극장 대표는 “2차 제작극장이란 단어가 생소했지만 이 사업으로 인해 처음으로 민간 예술인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았다”며 뿌듯해 했다.
연극은 일견 B급 병맛 소동극이지만, 사실 장국영 추모는 페이크에 가깝다. 연극을 보며 새삼 눈뜨게 되는 건 ‘두 개의 홍콩’의 존재다. 장국영, 주윤발 같은 스타들의 추억과 미쉐린 맛집이 넘치는 세련된 관광지로 우리 뇌리에 각인된 자유로운 홍콩과 중국 반환 이후 송환법 시위로 대표되는 억압적 상황에 놓인 홍콩을 마치 평행우주처럼 그려낸다.
2019년 장국영 15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홍콩으로 떠난 장사모 멤버들은 홍콩 시내 곳곳에서 장국영 영화를 재현하려 한다. 촬영이 무르익을 때마다 경찰과 시위대의 방해를 받는데, 멤버들은 남의 나라 싸움에 영 관심이 없다.
철부지 키덜트같은 장사모와 자유를 외치는 청년 시위대의 풍경은 부조화스럽다. 그런데 일행이 장국영이 소장했던 ‘87년 나이키 에어 조던2’ 한 짝을 시위대에 휩쓸려 잃어버리면서 연결고리가 생긴다. 평행우주와 같던 장사모와 시위대가 피범벅 운동화 한 짝을 건네며 하나의 세계관으로 모아질 때의 미장센은 오래 기억될 명장면이다. ‘두 개의 홍콩’은 결국 같은 사람들이 교차하는 세상이며, 서로의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한 것이다.
2019년 실제로 홍콩 시위대가 80년대 한국에서 울려 퍼졌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장면이 재연되기도 한다. 우리가 공기처럼 누리는 자유의 가치를 새삼 떠올리게 되는 무대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