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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불이 낮에 그래. 상했 없을 명은뱅크시의 사라진 작품들 l 윌 엘즈워스 존스 지음, 서경주 옮김, 미술문화, 2만5000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하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린 거리의 예술가. 영국 출신으로만 알려진 얼굴 없는 작가, 뱅크시. 그는 지난 30년 동안 세계 곳곳에서 건물 외벽과 담벼락, 표지판, 자동차, 교량, 풍선, 가축, 물탱크, 공중전화, 현금인출기 등 도시와 농촌의 모든 사물을 캔버스 삼아 그라피티를 그려왔다. 거개가 강렬한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발신하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원형 그대로 거리에 남아 있는 건 드물다. 대부분 훼손되거나 그림 부분만 감쪽같이 사라졌다.
영국 저널리스트 윌 엘즈워스 존스의 최근작 ‘뱅크시의 사라진 작품들’은 제목 그대로 뱅 주택금융공사 금리 크시의 작품 중 도난당했거나 파괴된 51점을 추려 소개한다. 단순히 사라진 작품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창작 과정과 작품에 담긴 메시지, 실종된 경위를 추적했다. 그 사연들은 놀랍거나 우습거나 안타깝거나 씁쓸하다. 책에는 작품들의 컬러 도판, 심지어는 작품이 절취되는 순간을 누군가 찍은 사진까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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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뱅크시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히피풍 여관 건물 레드 빅(Red Vic) 측면에 그린 쥐 그림. 뱅크시는 생쥐를 주인공 삼은 작품을 많이 그렸는데, 이때 생쥐는 사회의 밑바닥에 있지만 권력에 저항하며 살아남는 익명의 존재를 상징한다. 미술문화 제공


뱅크시 한국자산관리공사전환대출 는 가장 비상업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저항과 평화의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나 정작 그의 작품은 가장 자본주의적이고 상업적인 경매시장에 나타나 고가에 거래되기도 한다. 역설적인 현실이다. 예컨대 2011년 뱅크시가 영국 런던의 한 오피스 빌딩 벽에 ‘떨어질 때까지 쇼핑’(가로세로 약 4미터)을 그릴 때만 해도, 12년 뒤 이 작품이 건물 벽에서 통째로 취득세 계산 뜯겨 500만 달러라는 호가로 시장에 나올 것이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2011년 뱅크시가 영국 런던의 한 오피스 빌딩 벽에 스텐실 기법으로 그린 그림. 쇼핑에 빠져 추락하는 여성의 모습을 통해 현대 소비사회를 풍자했다. 2023년 건물 철거 때 벽에서 통째로 떼어내 공인인증서 재발급 보관 중이다. 미술문화 제공





2010년 뱅크시가 미국 디트로이트의 쇠락한 자동차 공장 벽에 그린 그림도 단 사흘 만에 공장 철거를 앞두고 사라졌다가 개인 소장자의 손에 들어갔다. 미술문화 제공


2010년 미국 디트로이트의 쇠락한 자동차 공장 벽에 그린 그림도 단 사흘 만에 벽에서 잘려 사라졌다. 슬픈 표정을 한 소년이 페인트 통과 붓을 들고, 방금 벽에 쓴 듯한 글귀 옆에 서 있는 그림이었다. “이 모든 것이 나무였던 때를 기억해.” 작품은 우여곡절 끝에 11만달러에 판매됐다. 구매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유아용품 회사 창업자였다.
2008년 온라인쇼핑몰 이베이(eBay)에 흥미로운 글이 올라왔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을 단돈 200만달러에 판매합니다. 세계 어디든 배송 가능합니다. 조지에게 전화하세요.” 조지는 이스라엘이 불법점령 중인 팔레스타인 자치령 베들레헴의 목수였다. 매물로 나온 작품 중 하나인 ‘몸수색’은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이스라엘 군인을 벽에 몰아붙이고 몸수색을 하는 장면을 상상한 그라피티 벽화였다.



2007년 뱅크시가 팔레스타인 자치령 베들레헴의 한 정육점 벽에 그린 ‘몸수색’. 곧장 뜯겨진 이 벽화는 2011년 미국 마이애미주에서 미식축구 구단주에게 42만달러에 팔렸다. 미술문화 제공


앞서 2007년 뱅크시는 베들레헴의 한 정육점 벽에 ‘몸수색’을 그렸는데, 조지라는 사람이 그 벽을 출입문이 있는 새로운 벽으로 교체해 줘 주인을 흡족하게 했다. 또 다른 작품 ‘젖은 개’는 주변의 억압을 털어내는 것처럼 개가 몸을 터는 그림이다. 총 중량 4톤이 넘는 두 벽면은 미국→영국→미국으로 긴 여정을 오갔다. ‘몸수색’(42만 달러)의 최종 구매자는 뱅크시처럼 익명을 선호하는 미식축구팀 구단주였고, ‘젖은 개’(35만 달러)는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에게 넘어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 아홉달 째인 2022년 11월, 뱅크시가 우크라이나 키이우 인근 마을의 부서지고 그을린 건물 외벽에 그린 그림.


2022년 11월, 뱅크시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인근 마을에 갔다. 전쟁 초기 한때 러시아군의 점령지였다. 부서지고 그을린 건물 외벽에 뱅크시는 실내용 가운 차림에 머리를 헤어롤러로 말아 올리고 방독면을 쓴 여성을 그렸다. 러시아의 막강한 무력에 저항하는 여성의 유일한 무기는 소화기였다. 뱅크시가 약자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호소한 이 그림도 채 한 달이 안 돼 벽에서 잘려나가 사라지고 말았다. 나중에 붙잡혀 유죄를 선고받은 범인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거리 예술은 루브르 박물관의 예술작품들과는 달리 누구의 소유도 아니다”고 주장했다.



2023년 초 뱅크시가 영국 해변가 마을 뒷골목에 버려진 냉동고를 활용해 그린 ‘밸런타인데이 마스카라’. 1950년대 가정주부가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 장갑을 낀 채 웃는데 멍들고 부은 눈과 빠지 앞니가 가정폭력을 암시한다. 남편은 냉동고에서 발만 삐져나온 것처럼 보이는데, 마땅한 대가를 치른 셈이다. 미술문화 제공


뱅크시의 공공예술 작품들이 겪는 수난은 ‘누구의 소유도 아닌 것’은 ‘모두의 소유’라는 평범한 진리를 많은 사람이 모르거나 모른 척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2023년 뱅크시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전시회에 맞춰 발간한 책 ‘컷앤런’(Cut&Run, 잘라내서 도망가기)에 이렇게 썼다. “이제는 이런 작업의 어떤 부분이 ‘예술’인지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은 그림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림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처럼 보인다.”
애초에 거리 예술은 일시성과 공공성이 본질이다. 그라피티는 만들어지자마자 사라질 운명이다. 그러나 뱅크시가 자신의 작품을 둘러싼 논란과 절취 행각까지도 퍼포먼스로 보고 의미를 부여한 적은 없다. 이 책은 뱅크시가 작품으로 말하려던 질문과 메시지를 되새기고, 예술의 본질과 공공성, 소유의 개념을 다시 묻는 기록이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