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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표지 첫여름, 완주


ⓒ 무제




언젠가부터 <첫 여름, 완주>(2025년 5월 출간)가 SNS에 자꾸 노출이 되기 시작했다. 단지, '출판사가 홍보를 참 잘하는구나'라고만 생각하고 지나쳤었다. 그러다 얼마 전 실제 전라북도 '완주'라는 도시에 6주간 머물 기회가 생겼다. 그 도시를 재무 거닐다, 우연히 방문했던 책방에서 이 책을 다시 만났다.

소설 속 '완주'라는 이름이 실제 그 도시를 의미하는지, 아니면 '완주하다'의 완주를 의미하는지 혹은 주인공의 이름인지 알지 못한 채로 나는 책을 구입했다. '완주'라는 단어에 자꾸 마음이 걸려 왠지 그 도시에서는 이 책을 꼭 사야만 할 것 같았다(※작가의 말: 예금최고금리 소설에 등장하는 완평과 완주 마을은 허구의 공간이다).
그 이후 이 책이 만들어진 과정과 출판사 대표 박정민 배우의 화제성에 대해 알게 되었고, 책에 대한 기대감은 한층 상승했다(관련 기사: 배우 박정민과 김금희 작가가 밝힌 <첫 여름, 완주> 뒷이야기 https://omn.kr/2eaei ). 또한 신형철 작가님과 가수 아이유가 추천사 아파트담보대출 고정금리 를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첫 여름, 완주>는 오디오북으로 먼저 제작된 책이라고 한다. 보통은 종이책이 먼저 나오고 그 이후 소리 책으로 제작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시력이 좋지 않은 아버지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런 형태의 출간을 시도했다는 출판사 무제의 대표 박정민 배우, <대온실 수리 보고 직장인을위한영어회화 서>를 펴내고 작가로서 큰 획을 하나 더 그은 김금희 작가와 듣는 소설 첫 번째 시리즈를 함께 만든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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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로 시력을 잃은 아버지를 생각하나 듣는 소설, 오디오북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하는 배우 박정민(유퀴즈 온 더 블럭 방송화면 갈무리)


ⓒ 유튜브 영상 갈무리




김금희 작가의 깔끔하면서 섬세한 문체로 입말을 살린 개성 있는 대사와 지문들이 곁들여진 소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순간의 장면을 선명한 그림처럼 상상하게 하고 소설의 상황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또한 인물들이 주고받는 톡톡 튀는 대사는 티키타카의 진수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덕분에 독자들은 특별하고 새로운 소설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다.

어린 시절 글을 못 읽는 할아버지에게 자막을 대신 읽어주고 영화 <마스크>의 짐 캐리 성대모사를 하던 소설 속 '손열매'(주인공)는 자라서 성우가 된다. 그러나 오랜 시간 친밀한 관계였던 룸메이트 고수미가 자신의 돈을 떼먹고 사라진 이후 우울의 늪에 빠져 목소리를 내는 법, 화는 참는 법을 잃어버린 채 방황한다.

더욱이 자기가 알던 고수미의 삶이 모두 '가짜'로 점철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열매는 수미의 물건들을 한강에 모두 던져 버린다. 던져버린 물건들 때문에 너울이 일어나 한강의 표면이 흔들렸고, 너울을 응시하던 열매는 조금씩 마음속 막막함을 떨쳐 버린다. 그리고 문득 수미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완주 마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곳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탄다.



대학을 졸업하면, 서른이 되면, 경력이 차면, 듬직한 안정으로 나아가리라 믿었지만 이상하게 삶은 매번 흔들렸다. 마치 우는 사람의 어깨처럼.(15쪽)


완주 마을에 도착한 열매는 매점과 장의사를 함께 운영하는 수미 엄마의 집에 머물며 의외의 편안함을 느끼고, 조금은 이상한 동거를 시작한다. 그곳에서 외계인 같은 청년 어저귀(강동경)를 만나고, 슬픔을 이야기는 것을 꺼리는 옆집 중학생 양미, 샤넬이라는 개를 키우며 칩거 중인 배우 정애라, 사고로 자식을 잃은 용운 엄마 등과 함께 여름의 시간을 포개 나간다.


열매는 저마다의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음에도 서로를 보듬는 사람들, 끝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틈 속에 섞여 살면서 조금씩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렇게 여름 한 철, 저마다의 삶의 완주를 이어간다.



이런 말 무력하게 느껴져서 그렇지만 힘내시기 바라겠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몫을 또 완주해야 하니까요. (169쪽)


소설 속에서 술에 취한 열매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버려진 온장고를 들고 걸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결코 인생을 내려놓지 않겠다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기필코 살아내겠다는 의지가 느껴져서 아득하고 아련했다.


수미의 배신으로 인해 힘겨운 시간을 보냈지만 미움이라는 감정마저 끌어안겠다는 포용적 제스처로 느껴졌다. 열매는, 수미를 여의도에서 본 사람이 있다는 말을 수미 엄마에게 전했을 때 순간적으로 보였던 안도의 빛, 그러나 기쁨이나 즐거움, 안도와 낙관 같은 것 대신 신산함, 피로감, 불안, 불편, 침묵이 더 안전하게 느껴지는 사람처럼 재빨리(110쪽) 표정을 감추는 모습을 보면서 수미를 다시 마주할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온장고는 다리가 휘청일 정도로 무거웠다. 마치 인생의 무게처럼. 열매는 팔에 힘을 주고 눈을 부릅뜬 채로 그 '인생'이라는 것을 들고 뚜벅뚜벅 걸었다. (100쪽)


열매는 완주 마을에서 지내는 동안 자신이 타인들에 대해 갖고 있던 궁금증, 무수한 질문들이 자신의 외로움과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충동들을 잠재우며 무심하게 걷는 감각을 알게 된다. 그 감각을 기억하며 다시 도시로 돌아가더라도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심상한 마음과, 이전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진실된 것과 마주할 것 같은 열매의 모습이 그려져서 독자로서 안도할 수 있었다.



열매는 하루에도 수백 번 마주치는 타인들 모두가 궁금했다. 운동화를 왜 그렇게 구겨 신었는지 어디를 가고 있는지 가면 환영받을 수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는 휴대전화에서는 무슨 얘기가 오가는지 혹시 ㅎㅎㅎ이나 ㅋㅋㅋ만 찍혀 있지 않는지. 그렇게 묻고 싶은 충동은 열매의 외로움과 관련 있다는 걸 이제는 알았다. 그런 질문은 결국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었음을. (152쪽)


이 책을 읽다가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이 떠올랐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우리는 나름의 고통과 낙담과 실패와 불행의 씨앗을 안고 살아간다. 조금씩 감추고 잊고 살아갈 뿐이다. 어떤 날은 슬픔이 목까지 차올라 숨을 쉬기 어려운 날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날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고통만 느껴질 때도 있고, 그러다 어떤 날은 웃고 사랑하고 심지어 행복하다고 느끼는 날도 있을 것이다.

양미가 운동장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여름의 빛과 시선을 겨루었던 것처럼 그 모든 삶의 순간에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응시한다면. 조금 부족하고 모자라더라도 자신의 삶을 온전히 완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떻게든 또 살아지는 게 삶이니까.



혼자 운동장을 뱅글뱅글 돌며 달리기를 하다가 숨을 섹섹 쉬며 멈추고 먼 곳을 바라봤다. 자신을 가로막는 불행과 겨루어 보겠다는 그 날카로운 응시는 여름의 빛과 가장 닮아 있었다. (186쪽)


우리의 사계절은 반복될 것이다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이 책 추천사에서 "제목 그대로 이 소설이 다루는 건 여름이지만 우리는 사계절을 다 경험한 것 같다고 느낀다. 사계절, 그러니까 인생이라는 다면체의 다른 이름 말이다"라고 썼다. 너무나 적확하고 명쾌해서 더 이상 덧붙일 말이 없었다.
우리의 사계절은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여름은 뜨거울 것이고, 겨울은 혹독할 정도로 차가울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새것 같은 빛과 낯선 조온습의 사계절을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우리의 마음속에 부드럽게 안착했던 것처럼, 각자의 '인생'이라는 레이스를 무사히 완주할 것이라고 믿는다.
표면적으로는 누군가의 낙담과 실패와 불행과 고통과 상실을 그리고 있는 소설인데, 이토록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분명, 김금희 작가가 마술을 부렸음이 확실하다.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각자의 몫을 완주하는 기적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게 만드는 소설이다.
여름의 초입, 전라북도 완주라는 도시에서 뜨겁고도 선명한 일상을 함께 보냈던 지인 여러 명에게 이 책을 선물했다. 그들은 <첫 여름, 완주>에 대해 어떤 감상을 이야기할지 매우 궁금하다. 그들과 다시 완주군 이서면에 모여, 소설 속 완주 마을의 완주 나무를 떠올리면서, 각자 꿈꾸고 있는 삶을 완주하기 위한 바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어떤 아쉬움과 어떤 그리움과 어떤 희망을 떠올리며 슬며시 네비게이션 목적지에 '완주'를 입력해 본다. 우리들의 완주가 오늘도 안녕하기를 바라면서.